산업현장 내 노동자 보호를 위한 수단 중 하나인 안전모. 안전모 1개의 평균 가격은 3000원, 일회용 마스크 두장 가격이다. 자전거 안전모는 2만원, 아이들 전쟁놀이할 때 쓰이는 장난감 안전모도 1만원 내외인데 산업현장의 안전의 상징이자 인간의 가장 중요한 신체부위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의 가격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안전신문은 국내 안전모 시장의 실태를 살펴보고 보호구 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에 대해 취재를 시작했다. 국내 안전모 생산업체는 대략 20여곳으로 매년 315만개 정도의 안전모가 생산되고 있다.

■ 업체별 안전모 판매 가격                                           <단위:원>

안전신문이 국내를 대표하는 안전모 생산업체 5곳을 취재한 결과 안전모의 가격은 기능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품질면에서 우수하다고 평가받고 있는 A업체의 경우 타업체에 비해 단가가 높은 편이었는데 6900원부터 2만원까지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B업체의 경우 좀더 저렴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는데 3800원부터 1만2000원까지 가격대가 형성돼 있었다. C업체는 2700원부터 5만5000원까지 제품이 존재했고 D업체는 3000원부터 8000원까지, E업체의 경우 3000원 단일제품만 취급하고 있었다.

고가품은 그만큼 값어치가 있었다.

안전모 내에 모터를 장착해 두부 열기를 식힐 수 있는 송풍·통풍 안전모, 무게를 낮춘 경량 안전모, 보안경이 삽입된 안전모 등 기능성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각 업체에서 주로 많이 팔리는 제품은 가장 값싼 제품이었다. 평균 가격을 산출해 보면 3000원 남짓한 일반 투구형 제품이 가장 많이 팔리고 있었다.

취재에 응답한 보호구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의 90%가 가격을 보고 제품을 선택한다”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왜 안전모는 저가 제품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을까.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노동자의 건강장해 예방에 적절한 보호구를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가 직접 안전모를 구매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사업주가 안전모를 구매해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즉 안전모를 구매하는 자와 이를 사용하는 자가 다르다.

산안법에 따라 사업주가 안전모를 구매해
노동자에게 지급하다 보니 값싼 제품만 선호
간신히 인증만 통과하는 저질제품 양산하는
국내 보호구시장 왜곡 막으려면
노동자에게 보호구 선택할 권리 찾아줘야

현실이 이렇다 보니 사업주들은 산안법을 지킬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제품을 선택한다는 것.

한 보호구업체 관계자는 “최근 들어 형태나 디자인 등에 차별성을 두고 각종 기능이 첨가된 안전모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추세지만 일부 대기업에 한정된 일로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하다”며 “아직까지 시장성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이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장은 “현장에서 일괄적으로 저렴한 보호구를 지급하다 보니 노동자들도 금세 쓰다 버리기 일쑤고 보호구 업체도 보호구를 개발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라며 “내 생명을 지키는 보호구인 만큼 스스로, 내 몸에 맞는 것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사업주가 임의로 보호구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원하는 보호구를 시장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개인보호구 구매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구매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보호구 비용을 보전해 주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같은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발 더 나아가 안 회장은 “안전화, 안전모, 안전대 등 안전보호구를 한꺼번에 담을 수 있는 보호구백도 함께 제공된다면 노동자들이 보호구를 직접 구비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은 문제는 비단 안전모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취재 결과 국내 보호구 시장 전반이 저가품을 선호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실은 고품질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제조사들의 의지를 약화시켜 결국 저가 제품, 즉 간신히 인증만 통과할 수 있는 제품이 양산되는 시장 왜곡현상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결국 국내에서는 양질의 제품을 생산해 좀 더 산업재해예방에 기여한다는 본연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해외에서는 저가 제품만 만드는 보호구 후진국으로 낙인찍힐까 우려되는 시점이다.  

‘노동자 스스로 몸에 맞는 보호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

박수민 기자  smpark7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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