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살인자가 있다고 한다. 투명인간을 이르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살인자로 일컬어지는 것은 산업현장에 흔히 존재하는 밀폐공간을 말한다. 작업을 하기위해 들어간 곳이 밀폐공간이라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안 그래도 최근 6개월간 산업현장에서 잇따른 질식 사망사고가 발생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도 질식사고가 계속된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경기도 이천의 반도체설비 공사현장에서는 설비를 점검 중이던 근로자들이 질소가스가 유입되는 바람에 3명이 질식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앞서 지난 1월에도 경기도 파주에서 미처 질소가스를 차단하지 않은 채 정비작업을 하던 근로자 3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빼앗겼다.
이 뿐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울산 울주군 건설공사 현장에서는 공사장 시설 내 밸브손상에 의한 질소가스 누출사고가 나자 이를 점검하러 들어갔던 3명의 근로자가 모두 사망하기도 했다.
밀폐공간 질식재해는 사망률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최근 5년간 174명의 재해자 중 절반인 87명이 사망했으니 치사율이 50%에 이르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치사율이 높다는 이유로 모두들 공포에 떨며 전전긍긍했었다.
그런데 이 사람잡는 밀폐공간은 보이지 않는 살인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위험한 것인데도 이를 우습게 아는 무시하는지 모를 정도로 가벼이 여기는 행태가 이해되지 않는다.
밀폐공간은 환기가 불충분해 산소농도가 떨어지거나 유해가스 발생할 수 있으며 질소가스 등이 누출되면 질식 사망률이 크게 높아진다. 최근 발생한 밀폐공간 질식사고가 모두 환기가 불충분하거나 유해가스 발생으로 인한 것이었다.
뭐니뭐니 해도 중요한 것은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 ‘밀폐공간’에서 작업하면서 그 위험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원천적 안전수칙 미준수의 전형이다.
원청과 하청 간에 위험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거나 작업절차 및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이런 재해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에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밀폐공간 질식사고 예방을 위한 ‘3-3-3 안전수칙’을 제시하고 지도에 나서기로 했다. ‘3-3-3 안전수칙’이란 ▲원청, 협력업체, 작업근로자 등 3자간에 유해 위험정보를 상호 공유하고 ▲사업장내 밀폐공간 조사 및 확인, 해당 공간에 출입금지 표시, 충분한 안전조치가 확인된 경우에만 밀폐공간 작업을 허가토록 하는 것과 ▲밀폐공간 작업 시 산소농도 등 측정, 환기, 보호구 착용 등 3대 안전수칙을 준수하는 것이다.
안전보건공단은 전국 지역본부와 지사를 통해 밀폐공간 작업 시 필요한 산소농도 측정기, 공기호흡기, 이동식 환기팬 등을 무상으로 대여하고 안전장비류 구입비용도 일부를 지원한다.
밀폐공간 질식재해는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안전사고임에도 이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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