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까지 달려갔어도 엎질러진 물 앞에선 대책이 없었다. 이미 실기한 탓이다. 진도 앞 바다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사고의 실종자 가족들이 “도와달라”며 눈물로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현재 진행되는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 국민들에게 호소한다”며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실종 학생들의 학부모들은 “지금 이 대책없는 상황에서도 우리 아이들이 살려 달라고 차가운 물속에서 소리치고 있을 것”이라며 가슴을 쳤다. 온 국민이 억장이 무너지는 분노와 아픔을 함께할 뿐이었다. 대한민국의 안전은 사상누각의 허상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며 허황한 안전의 맨얼굴이었다. 어찌 해서 이런 일이 우리 곁에서 또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수없이 되뇌여 온 말이 있다. 안전불감증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안전불감증 때문에 이 참담한 여객선 세월호 침몰의 비극을 부른 것이다. 사고 소식이 처음 전해진 첫날 아침엔 승선자 구조에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안전을 경시한 업보가 죄없는 학생들을 물속에 가두는 예상불가의 결과를 가져 왔다. 이런 안타까운 참상을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차마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하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 현실로 펼쳐진 것이다. 우리는 그간 여러 형태의 대사건들을 겪으며 그때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것은 다짐이 아니라 떠들썩하게 법석만 떤 한때의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다.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잃어버린 소의 외양간만 살펴볼 뿐 또다시 잃을 수 있는 다른 소들의 외양간은 거들떠 보지 않는다. 그러니 소를 잃는 사고가 연발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1990년대만 해도 마치 서로가 앞을 다투듯 대형사고가 잇따라 터졌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등과 같은 후진국형 안전사고가 연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케 하면서 우리를 궁지에 몰아 넣었다. 이처럼 우리를 아프게 했던 쓰라린 과거와 그때의 교훈을 바탕으로 순탄치 않게 태어난 우리 안전문화가 이제 그 정착을 위한 최근의 노력을 집중하면서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 뜻밖의 세월호 사고가 덮쳤다. 세월호 침몰과 함께 되돌아 본 우리의 안전문화는 참으로 허점투성이의 빈껍데기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침몰사고의 원인은 앞으로도 계속 철저한 조사를 통해 자세히 밝혀내겠지만 현재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크게 잘못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월호라는 대형여객선이 겉만 멀쩡했을 뿐 ‘안전 0점’의 실태를 여실히 보여줬듯이 그 주변 모두의 안전관리가 부실투성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멀쩡할 뿐 그 속은 안전사각지대였다. 해운사는 18년 넘게 사용한 고물 배를 사다가 선미부분을 증축했다. 안전은 제쳐두고 돈벌이에만 신경을 썼다. 이 증축부분은 이번 침몰사고의 원인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요한 선박직 인원은 모두 부실하게 채웠다. 그러니 운항도 엉망이었다. 선장이 휴가명목으로 자리를 비운 곳에 비겁한 대체선장을 배치한 것이 비극의 시발이었다. 경험부족의 3급 항해사와 조타수가 기술적 실수로 배를 위기에 빠뜨렸다. 배가 침몰하게 되자 선장은 선원들과 함께 승객들을 버려두고 먼저 탈출했다. 선장의 명예를 훼손한 특별한 사례로 국제적으로 비난을 샀으며 안전후진국의 낙인을 찍게 된 계기를 만든 것이었다. 구조작업 중에 속속 드러난 정황만 해도 이 배 주변은 온통 안전부실이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안전은 형식뿐이었다.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안전은 실제로는 가장 허접스런 것으로 뒷전에 밀려나 있었다. 필수적인 안전교육도 없었다. 안전검사는 형식적으로 진행된 양상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안전인가’라는 대목에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이런 상황이고 보면 이 세월호 침몰의 비극은 그 이전에 이미 약속된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차원에서 재난과 사고를 총괄하는 기구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비교적 재빨리 현장에 임했다. 그 사령탑인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은 임명장을 받고 일주일도 못돼 큰 사고에 부딪쳤다. 그러나 의욕이나 능력과는 별도로 현장에 임했을 땐 힘을 쓸 시스템도, 매뉴얼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다만 잃어버린 시간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돌이켜 보면 지난 대소 사건들과 함께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서야 갖가지 관련법들의 개정이 있었다. 그러나 법만 만들어 놓으면 무엇 한단 말인가. 이제서라도 국민이 납득할만한 답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의 안전문화가 최소한의 기반이라도 갖춰져 있었던들 이번 같은 참사는 되풀이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번 참사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안전이 이같은 빈 깡통이었나 하는 자탄을 금할 수 없다. 한동안은 큰 소리를 내는가 싶던 안전문화는 어디로 갔으며 예방문화 정착은 어디로 얼굴을 감춘 것일까. 그간 발전하는 한국의 위상에 먹물을 끼얹는 것이 다름 아닌 ‘한국은 안전후진국’이란 달갑잖은 타이틀이었다. 다 잘 나가는데 어찌 해서 안전에서만은 갈수록 뒷걸음질을 치는 것일까.   누가 뭐래도 한국이 안전후진국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의 안전문화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안전의 책임이 모두 국가와 행정책임자에 있다는 생각은 이제 접어야 한다. 받고자 하는 입장에서 안전을 챙길 것이 아니라 안전은 국민 모두의 공동의무란 안전의식으로 안전을 추구해야 우리들은 비로소 안전후진국에서 벗어나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힘들고 번거롭더라도 우리는 지속적인 범국민적 안전의식 심기에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안전을 우리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안전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안전한 나라, 안전선진국이 되려면 이제부터라도 안전문화 정착에 매진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는 먼저 우리 주변에 휘둘러진 ‘사상누각 안전의 허상’부터 깨뜨려야 한다.

안전신문  webmaster@safetynews.co.kr

<저작권자 © 안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