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과 보건은 항상 강조돼야 할 인간 가치의 최고선이다. 행복은 안전과 보건에 의해 담보된다. 그리하여 선진국을 평가하는 척도로 ESH(환경·안전·보건)가 강조되곤 한다. ESH를 소홀히 하면서 외형적인 풍요와 성장만을 드높이고 추구하는 국가와 사회는 천박한 졸부의 국가, 후진국형 사회로 취급받게 된다.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는 빛과 그늘이 동시에 드리워져 있다. 근대화를 통해 가난과 배고픔을 몰아내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 거대한 공장의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국가 발전의 상징이자 가슴 벅찬 감격으로 받아들이던 때가 있었다. 조국 근대화의 역군들은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오직 불굴의 의지와 희생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맨몸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이 분들의 희생과 숭고한 의지는 신화로 남아 있지만 이제 가치관과 사고방식은 바뀌어야 한다.   파괴된 공동체와 훼손된 자연, 유보된 인권과 계층의 불평등, 산업구조의 불균형 등은 또한 농축 근대화의 한 단면이다. 맨몸으로 건설한 근대화, 한강의 기적, 한민족의 자부심이 하루 아침에 국가 부도로 파산 선고를 당하는 치욕을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만 했다. 그것이 IMF였다. IMF를 통해 우리는 균형을 갖춘 발전이 곧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교훈으로 뼈에 새겨야 했다. 원칙과 기초가 힘이고 경쟁력이다. ‘어디로’ 가는가와 함께 ‘왜’ ‘어떻게’ 가는가도 이제는 물어야 할 때가 됐다. 안전과 보건, 더불어 사는 환경 등이 행복의 조건이며 바로 웰빙의 기초이다. 국가의 존재 근거도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IMF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또 맨몸과 불굴의 의지로 위험을 무릅쓰고 분투하기를 강요받았다. 배고픔을 이겨낸 조국 근대화는 열혈적 분투를 통해 획득된 것이라는 신화가 다시 강조됐다. 이와 함께 안전과 보건·환경은 시기상조적인 사치로 다시 유보됐다. 결국 기업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공포되고 안전은 다시 사각지대에 감금됐다. 감소 추세를 보이던 산업재해는 사망률은 더 이상 개선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선진국들은 ESH를 규준화해 각종 무역 규제에 활용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ESH 보장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조건이며 국가 신인도의 척도가 되고 있다. 성장과 안전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병행돼야 할 가치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성장은 사상누각이며 크나 큰 재앙을 키우는 것이다. 절약을 위해 안전 분야를 유보한다는 것은 가치의 전도이며 국가 기강을 근본에서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실제 매년 우리나라가 산업재해로 인해 치러야 하는 대가, 사회적 손실비용이 무려 10조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근 10년간 73만여명의 근로자가 산업재해를 당했고 2만6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제 우리나라는 안전보건관리체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의 안전관리 제도 및 기준을 국제 수준에 부합되도록 관련 법령 및 규정을 체계적으로 정비해 각종 삶의 영역에서 근원적인 안전망을 확보해야만 한다. 선진국들이 세계시장에서 자국민의 안전과 보건 및 환경을 담보로 쳐놓은 장벽을 넘어 세계로 진출하기 위해서라도 안전에 대한 국제수준의 패러다임을 갖춰야만 할 것이다. 선진국에 진입한다는 것은 개인의 인권과 복지·삶의 안전이 사회적 가치로 보장받는 것을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ESH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증대하고 있다. ESH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인간의 가치이며 국가의 존재 근거이자 발전의 기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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