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의 사장이 회사 앞마당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얼마 후 수영장 크기의 호수가 하나 만들어졌다고 한다. 어느 사단장은 퇴근하면서 연병장이 울퉁불퉁한 것 같다고 한마디 했는데 다음날 출근길에 보니 연병장이 다리미로 다린 것처럼 평평해져 있더란다. 밤새 수백명의 사병들이 군화를 신고 땅을 다져놓았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가 권력자일수록 자의식이 짱짱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든 사례의 일부다. 권력자의 한마디 한마디는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   권력자의 의지가 곧바로 관철되는 조직은 매우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독이 든 술을 마셨을 때 건강한 혈관일수록 독을 온몸에 빨리 퍼뜨리는 것같은 부작용도 있기 때문에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에 대한 자의식이 아예 없거나 희박할 경우 그 폐해는 치명적이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인수위 간사단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해 목포 대불공단의 전봇대를 예로 들며 탁상행정식 업무처리를 비판하자 바로 다음날 전봇대 2대가 뽑혔다.   마침 비가 내리고 있어서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지만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대불공단의 문제는 전봇대 한두 개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그때 뽑혀 나간 전봇대가 문제의 전봇대인지는 전봇대를 뽑은 사람조차도 모르는 일이 되고 말았다.   경위야 어떻든 이 사건은 기업활동을 옥죄는 규제를 철폐하겠다는 이명박 당선인의 강한 의지가 표현된 상징적 사건이 됐다. 이와 같이 권력자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때로는 권력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또한 조직이나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응당 한마디 정도는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조직이나 사회는 권력자가 그것을 용인하거나 무관심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태안 앞바다의 기름유출 사고에 이어 한국타이어 근로자의 집단사망사건이 터졌고, 이어서 이천의 냉동창고 화재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숭례문이 방화로 소실되는가 하면, 급기야는 소방방재청이 입주해 있는 정부종합청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또 대구역에서는 열차가 같은 선로로 진입해 충돌하는가 하면, 대구지하철 2호선은 정전사태로 운행이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일련의 사고들이 대형참사였거나 하나같이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사고들이었다. 더구나 이런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인터넷에 떠도는 ‘다음은 또 어디냐?’는 말에서 국민들의 불안감과 무력감, 그리고 두려움이 짙게 배어난다.   이쯤 되면 당선자께서 ‘안전’에 대해 한 말씀 하실 만도 한데 어찌된 일인지 ‘안전’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일련의 사고들이 모두 인수위 활동이 한창이던 중에 일어났지만 인수위도 ‘안전’에 대해서만은 유독 말을 아꼈다.   안전의 기본은 규제다. 당선자께서 규제의 전봇대는 뽑아버리겠다고 단언한 마당에 누가 감히 안전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나설 수 있겠는가?   최근 연이은 사고는 단발성 사고가 우연히 겹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안전문제의 일부가 관리 부실의 틈을 비집고 나온 것에 불과하다고 봐야 한다.   현대사회는 위험사회다. 도처에 대형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방심이 사고를 부르고 사고는 자칫 대형참사를 부를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 경고음이 여러 차례 울렸다. 그럼에도 권력자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래서 문제가 제법 심각해 보인다.   대통령이 한마디 했다고 해서 모든 사고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대형참사의 경고음이 연달아 울리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더 늦기 전에 단 한마디라도 좋으니 안전을 챙기겠다고, 사고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겠다고, 안전의 전봇대는 확실하게 박겠다고, 한 말씀해 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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