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십팔사략(十八史略)’에 실려 있는 고사에 구밀복검(口蜜腹劍)이란 구절이 있다. “입에는 꿀을 바르고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꿀맛 같이 절친한 척하지만 내심으로는 음해할 생각을 하거나 돌아서서 헐뜯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당(唐)나라 현종(玄宗)은 측천무후(則天武后) 이래의 정치의 난맥을 바로잡고 안정된 사회를 이룩한 인물로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치세 초기였다. 현종은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양귀비(楊貴妃)에 넋을 뺐겨 주색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이 무렵 이임보(李林甫)라는 간신이 있었는데 환관(宦官)에게 뇌물을 바치면서 다리를 놓아 왕비에 들러붙었다. 왕비 덕에 현종의 환심을 사면서 출세해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이임보는 황제의 비위를 맞추면서 절개가 곧은 충신의 간언이나 백성들의 소리가 황제의 귀에 들어가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 모든 신하들의 입이 봉해졌으며 직언을 도모하려는 선비들도 아예 황제에게 접근할 방도가 없었다. 그가 재상 지위에 있던 19년 동안에 천하의 난리를 길러냈으나 현종은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안녹산(安祿山)도 이임보의 술수를 두려워했으므로 감히 반란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임보가 죽자 양귀비의 일족인 양국충(楊國忠)이 재상이 되면서 그의 죄목을 하나하나 들어 현종에게 고했다. 뒤늦게 깨우친 현종은 이임보의 생전 관직을 모두 박탈하고 패가망신과 함께 부관참시(剖棺斬屍)의 극형에 처했다.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이임보가 죽은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훗날 고사에 “이임보는 현명한 사람을 미워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질투해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배척하고 억누르는, 성격이 음험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고 말했다(李林甫 妬賢嫉能 性陰險 人以爲 口有蜜腹有劒)”고 실렸다. 그런데 요즘 말 많은 패가망신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석면(石綿)이다. 석면은 섬유상으로 마그네슘이 많은 함수규산염(含水硅酸鹽) 광물이다. 아스베스토스·돌솜이라고도 한다. 광물 조성상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크리소타일(chrysotile)을 주성분으로 하는 석면은 온석면(溫石綿)이라 해 질이 좋은 것은 실이나 직물로 이용된다. 다른 하나는 각섬석질(角閃石質) 석면으로, 섬유는 약하지만 화학약품에는 강하다. 석면 섬유의 경우 한 가닥의 굵기는 대략 머리카락의 5000분의 1 정도이다. 내구성, 내열성, 내약품성, 전기 절연성 등이 뛰어나고 값이 싸서 건설자재, 전기제품, 가정용품 등 여러가지 용도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 석면이 고사에 나오는 이임보처럼 패가망신하고 말았다. 사실 석면처럼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날개 없이 추락한 물질도 보기 드물다. 20세기 산업발전과 함께 가장 널리 쓰인 물질인 석면은 거의 3000가지가 넘는 각종 제품에 들어앉았다. 중공업 현장에서 일상용품에 이르기까지 현대문명에서 석면은 필수품이었다. 그래서 석면은 오랫동안 마법의 물질, 기적의 물질이라고 불리며 군림했다. 하지만 석면은 이제 폐암과 악성중피종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로 낙인찍혔다. 후두암, 위암 등 다른 암과 불치병인 석면폐도 일으킨다. 석면 질환은 1930년대부터 알려졌고 1960년대에 들어서는 석면이 암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때부터 석면은 조용한 시한폭탄, 죽음의 먼지, 침묵의 살인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동안 우리는 석면에 너무 관대했으며 그래서 손쓰기가 늦었다. 올들어 안전보건에 대한 국가적인 홍보가 시작되면서 국민들도 석면을 경계하게 됐다. 만시지탄이지만 석면이 아예 ‘광물’에서 제외되고 패가망신 부관참시에 이르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안전신문  webmaster@safetynews.co.kr

<저작권자 © 안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