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의 상징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영도다리’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민족의 애환이 서린 영도다리는 1934년부터 1966년까지 하루에 두번씩 ‘끄덕끄덕’ 머리를 치켜들었던 동양 최초의 도개교(跳開橋)였다. 이 다리 곳곳에는 사람들의 가슴을 촉촉히 적셨던 즐거운 추억과 슬픈 과거사가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으며 6·25 전쟁의 비극이 극에 달했던 수난의 시절에는 생활에 지친 이산가족들이 이 영도다리 난간을 부여잡고 피눈물을 흘렸던 곳이어서 그야말로 민족의 애환이 서려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영도다리는 하루에 두번씩 다리를 드는 그 웅장한 모습으로 더욱 유명해진 명소였다. 하지만 다리의 역사로 친다면 부산에서는 이 유명한 영도다리 보다 더 먼저 생긴 구포다리가 있다. 영도다리 보다 2년 앞서 1932년에 세워진,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다리로 7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구포교는 이제는 교통분담의 역할에서 거의 퇴역하다시피 한 ‘구닥다리’지만 이 또한 부산의 상징으로 시민들의 아낌을 받고 있다. 이 구포다리가 지난날 태풍 ‘매미’의 공격을 받았을 때 19번째 교각이 불어난 강물을 견디지 못하고 유실되면서 길이 15ｍ짜리 상판 4개가 무너져 강물에 떠내려갔다. 사고 당시 승용차와 택시 2대가 마침 다리 위를 주행 중이어서 성수대교 붕괴사건의 재판을 연출하는 듯했으나 승용차는 붕괴 직전 사고지점을 극적으로 통과했으며 택시는 급정거한 후 후진으로 재빨리 빠져나와 천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안그래도 무너진 구포다리는 이미 안전문제로 계속 철거 논란을 빚어오던 중이었다. 철거계획이 나오자 인근 주민들은 편리한 통행로가 없어진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부산시는 이 다리를 철거하는 대신 여러 차례 보강공사를 하면서 2.5t 이상의 차량을 통제하고 승용차에 한해 일방통행을 하도록 소통을 제한했는데 그 때가 1978년도였다. 시간은 흘러 부산시는 결국 지난 1995년 이 다리를 ‘재난위험시설’로 지정한 뒤 열심히 관찰해 왔던 것인데 비록 지난 태풍 매미 때에 무너지기는 했으나 아슬아슬하게 인명피해만은 면할 수 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도 그나마 깨어 있는 자에게 목숨을 부지할 찬스가 잡히는 것이다. 앞서 오래 묵은 구포다리를 ‘구닥다리’라고 표현했지만 구닥다리는 다리가 아니다. 흔히 ‘오래 묵은 물건’을 구닥다리라고 부르는데 구닥다리라는 말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 말이다. ‘여러 해 묵은 물건’이나 ‘어떤 일에 오래 종사해서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기술이 낡은 것이 된 사람’ 등을 얕잡아 이르는 말로 ‘구년묵이’가 있는데 묘하게도 사람들은 ‘구년묵이’라는 표준어보다 구닥다리라는 비표준어를 훨씬 많이 쓰고 있다. ‘다리’라는 어감에 친근감이 가는 모양이다. 다리건 그 무엇이건 구년묵이 또는 구닥다리라면 낡고 오래된 것이니 폐기를 검토할 수 있으나 그 이전에 안전여부를 면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 안전하다고 판정된다면 구닥다리도 쓰임새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은 달라서 구닥다리 발상으로는 안전 창출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세상이 좋아지고 삶의 질이 향상될수록 안전의 수요는 배수로 늘어난다. 지난날에는 창조가 있어야 안전을 생각했지만 현재와 미래는 안전을 먼저 설계해야 창조가 가능해진다. 이제부터는 모든 것의 바탕이 안전이어야 한다. 안전은 결코 잘 사는 이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가 잘 사는데 절대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선진국으로 가고 있는데 그 첫번째 증거가 안전을 삶의 1순위로 올려놓은 것이다. 구닥다리 시대의 안전은 매우 추상적인 것이었지만 지금의 안전은 구체적 형태로 나타난다. 안전은 남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나라가 뜻을 모아 스스로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myungw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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