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총선에서 후배 한정애가 국회의원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오래 전에 내가 쓴 그녀에 관한 글을 읽어보고 잠시 추억에 잠겼다. 1989년 내가 새로운 직장을 찾아 부산 안락동의 애경빌딩 2층 사무실에 있는 안전보건공단 부산지역본부를 방문했을 때 나에게 차를 가져다준 여직원. 긴 머리를 붉은 끈으로 매고 서글서글하게 생기고 작업복을 입고 있었으며 바쁘게 왔다 갔다 하며 일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나는 그녀가 한정애였고 그녀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며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 때문에 한동안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됐을 때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녀를 좋아했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고 인정해 주는 만큼 그녀도 나를 따랐다. 애로사항이 있을 때 항시 찾아와 상담을 했고 나는 합리적인 방향으로 인도하려고 애썼다. 내가 창원지도원에 발령을 받고 근무하던 중 그녀를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그녀는 차장으로 진급을 하고 창원으로 왔기 때문이다. 교통 사정이 나빠 2시간도 넘게 걸리던 부산까지의 퇴근길을 초보운전으로 내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하며 태워주기도 했다. 그녀가 먼저 가서 일하던 울산지도원으로 내가 갔을 때 그녀는 사회생활이나 회사생활에서나 한결 성숙해 있었다. 그녀와 헤어져 내가 교육원 근무 차 올라오고 난 어느 날 그녀는 불쑥 영국으로 유학을 갔고 세월은 빠르게 흘러 그녀는 학위를 받고 귀국해 우리 집으로 나를 찾아왔으며 포옹으로 회포를 풀고 술을 마셨다. 4년 동안의 영국생활, 술기운에도 혀 꼬부라지지 않고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했으나 가끔 영어단어가 튀어나오는 것이 변화된 모습이랄까? 얼굴엔 나이가 들어있었다. 세파를 이겨낸 흔적도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당장 갈 곳이 없었다. 공단본부 근무를 하게 되고 가까운 곳에서 출퇴근해야 할 텐데…. 나는 아내와 상의했다. 그녀를 당분간 우리 집에서 기거하도록. 아내는 흔쾌히 허락했고 아들이 사용하던 빈방에 그녀를 잠재우고 밥도 같이 먹고 출퇴근도 같이 하는 동고동락하는 처지로 변했다. 이렇게 한 식구로 자리잡아가던 어느 날 아내와 나는 그녀를 출가시키기로 작정하고 아파트를 물색했다. 마침 적당한 크기와 좋은 위치, 비교적 낮은 가격의 아파트가 나타났고 계약을 서둘렀다. 월급 받아서 갚으면 되니 융자를 받으면 되고 아파트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어렵게라도 장만하라는 권유를 그녀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아파트를 물색하고 계약하고 주민등록을 이전하고 잔금을 치르고 청소를 하고 도배를 하고 주방용품을 구입하고 이사를 하는 것까지 아내는 신경을 써줬다. 추운 겨울날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혼자만의 좁은 공간이 부천시 중동 중앙공원 옆에 있고 그녀의 보금자리다. 이제 나의 임무는 그녀를 결혼시키는 일이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과 만났을 때 무슨 결함 때문에 결혼을 기피하는 것 아니냐며 쑤군거린 적도 있지만 조만 간에 해결될 기미가 보인다. 영국유학 도중에 만난 남자, 지금은 일본에서 유학 중인 야마모토(애칭)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모양이다. 가끔 용돈도 보내준다기에 “어렵게 벌어서 보내주는 돈을 덥석 덥석 받아쓰다가 코를 꿰게 되면 어쩔래?”라고 하는 농담에도 싫은 내색 없이 큰소리로 웃는 걸 보니 아마도 그러길 바라는 눈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요즈음의 마흔 살 처녀 한정애보다 신입사원시절의 순수함을 지닌 한정애가 그립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되돌릴 수 없으니…. 바라는 바는 그녀가 더 의젓해지고 무게 있는 행동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기교를 부리기 보다는 옳고 그른 것을 확실하게 구별하고 실천하는 장점은 계속 살리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도 더 많이 그녀의 가슴에 담겨지기를 바란다. 그 이후 내가 바라는대로 그녀는 잘 성장했다. 안전보건공단의 노동조합 위원장을 역임하고 내가 바라던 결혼도 했고 한국노총에서 근무하더니만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다. 참으로 장한 일이다. 마음속으로 축하를 보내면서 작은 소망을 담아본다. 근로자들의 권익을 위해, 근로자들의 안전보건을 위해 일하기를 소망한다. 아마도 그녀가 경험했던 부조리와 불합리를 바르게 바꾸는 법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가령 근로자와 관련된 기관에서 ‘전시행정 방지, 기관장의 개인 치적 홍보 등 승진을 염두에 둔 업무수행 방지, 업무의 양 보다 질 위주로 일하기, 낙하산 기관장 선임 방지, 그리고 비정규직 철폐, 실질적인 근로자의 안전보건 우선, 직업병 발생시 유해물질을 사용했다면 회사의 책임, 산업재해 발생시 근로자에게 책임전가 방지’ 등등의 내용이 들어가는 획기적인 입법활동으로 오늘의 그녀를 있게 한 근로자와 사업주들에게 보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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